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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출판사] [조선일보] 마감 없이, 배식 없다

작성자 : 관리자 I 작성일 : I 조회수 : 5748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기자들끼리의 농담이 있습니다. 기사는 누가 쓰나. 데스크의 불호령인가, 기자의 성실인가. 쟁이들끼리의 정답은 '마감이 한다'입니다.


인간은 마감이 있어 안달을 하고, 계획을 세우며, 기를 쓰고 작업을 해냅니다. 모든 일에 마감이 없다면, 과연 사회가 돌아갈까요. 그런데 가끔 막된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감은 때로 너무 긴 게 아닐까. 언제가 끝인지를 자신은 모르니까. 하지만 만약 스스로 마감을 정한다면 어떨까.


이번 주 읽은 책으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굿바이, 헤이세이'(토마토 刊)가 있습니다. 지난해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중의 하나였던 장편 소설. 시선이 멈췄던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썼다는 점. 또 하나는 이 작품의 배경 중 하나가 '안락사'였기 때문입니다.


8년 전을 기억합니다. 그의 출세작이 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2011)을 썼을 때 노리토시는 스물여섯. 도쿄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청춘의 학위 논문이자 일본 젊은 세대를 분석한 리포트였죠. 취업률도 바닥이고, 결혼도 힘들며, 고령화로 청년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행복하다고 주장하는가. 지금처럼 일본이 호황이던 시절이 아닙니다.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정점이던 2011년의 일이고, 한국에서는 '헬조선' 담론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죠. 진영 논리 없는 나라의 자기 만족적 삶이랄까요.


이제 34세가 된 일본의 사회학자는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세상'을 살고 있는 이 땅의 국민들에게 조금은 한가한, 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는 질문을 연애소설 형식으로 던집니다. 100세 시대라지만, 우리는 오히려 너무 오래 살아 고민 아닌가. 전성기를 지난 삶은 어떤 의미가 있나. 자살하다 실패한 사람은 누구도 처벌하지 않으면서, 존엄성을 지키며 죽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면 벌하는 세상은 모순 아닌가.


물론 이 비좁은 공간에 모두 담을 수 있는 고민은 아니죠. 하지만 이념 갈등보다 일상이 더 중요한 개인들에게, 100세 시대의 휴머니티는 더 의미 있는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이번 주 마감이 급합니다. 마감 날 저녁은 늘 부원들과 함께 먹는다는 얘기를 했던가요. 이렇게 농반진반 불호령을 내립니다. 마감 없이, 배식 없다.


어수웅 기자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7/2019051701825.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fbclid=IwAR3-7A9j8YwQQ5hswdkUgcSPBL9rndhGTvPASSzyism_3nkH2YiILPcpFdY